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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부석사 (국보5점과 선묘낭자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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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의 국보

 

1.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각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며 부석사의 본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배흘림기둥, 안 쏠림, 귀 솟음, 안 허리 곡 등의 기법이 사용되었다.

 

배흘림기둥 : 목조건축의 기둥을 중간 정도가 직경이 크로 위아래로 갈수록 직경을  점차 줄여 만든 기둥이다.

귀 솟음 : 건물 중앙에서 양쪽 끝으로 갈수록 기둥을 점차 높여주는 건축기법이다.

안 쏠림 : 기둥을 만들 때 수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둥을 약간 안쪽으로 기울여 만드는 것이다.

안 허리 곡 : 처마 끝을 건물 중앙보다 튀어나오게 해서 하늘을 향해 휘어지게 만든 것이다.

 

2. 소조 여래좌상(국보 제45호)

무량수전의 본존으로 다른 불전 불상과는 다르게 측면을 바라보고 있다.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서방 정토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 부처를 향해 극락왕생의 전통을 이어 제작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불상으로서의 위엄이 잘 배어 있으면 정교한 제작기법을 보이는 우수한 불상이다.

또한 진흙으로 만든 불상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어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

 

3.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에 위치한 이 석등은 높이 2.97m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으로 상하 비려의 교묘함이나 조각의 정교함에서 신라시대 석 등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다. 화창 주위에 작은 구멍을 돌려 뚫고 나머지 네 면에는 보살입상 1구씩이 조각되어 있는데 조각수법이 매우 정교하다.

 

4. 조사당 (국보 제19호)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대사의 상을 안치하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맞배집으로 전통적인 주심포식의 과도기적 건물로서 양식과 기법이 특이한 건물이다.

주심포식 :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것을 말한다.

공포 : 한국, 일본, 중국 등지의 전통 목조건물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추어 댄 나무 부재이다.

그리고 조 사장 처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전설의 꽃 선비화로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아 자란 것이라고 한다.

조사당은 의상조사 스님의 호 "조사"를 붙여지은 이름이다.

 

5.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이 벽화 6점은 원래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사원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6폭의 벽화이고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상을 그린 것인데 이 절의 창건주인 의상대사를 외호 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듯하다.

현재 상태 보존을 위해서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의상 스님과 선묘 낭자의 사랑이야기*

의상 스님이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타기 전 묵는 하숙집 딸인 선묘 낭자가 의상 스님을 사모하게 되었는데

의상 스님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도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상 스님이 당나라로 떠나기 전 찾아갔지만 의상 스님은 이미 떠나고 만나지 못하였다.

선묘 낭자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바다에서는 용으로 의상 스님을 도와주고 부석사를 지울 터를 발견하였을 때도 용으로 나타나 큰 바위를 공중에 들었다 놓았다 해서 살고 있던 다른 무리들이 굴복하여 모두 의상 스님의 제자가 되어 불사를 도왔다.

돌이 공중에 떴다고 해서 절 이름이 부석사라 지었다.

그 부석은 무량수전 서쪽 암벽 밑에 있으며 선묘룡은 무량수전 앞 석등 밑에 묻혀 절의 수호신이 되었다.

 

위의 글은 개인적인 자료조사와 부석사의 김경수 설명사의 설명을 요약 첨부해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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